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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호(05월) | 동해, 그 귀중한 이름을 찾기 위한 우리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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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최양선(사단법인 동해연구회 이사) 작성일17-05-29 08:13 조회1,5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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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그 귀중한 이름을 찾기 위한 우리의 여정

 

최양선(사단법인 동해연구회 이사)

 

1. 서 론


한국인들은 20세기 초에 일본의 침략을 받아 주권을 빼앗기고 식민지로서 36년간 노예 같은 생활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심지어 개인의 이름도 빼앗겼다. 그 시절에 빼앗기지 않은 것이 없었고 철저히 착취  당하였다. 그 악몽의 시절 때문에 우리의 조상들이 5천 년 동안 살아온 이 거룩한 한반도는 세계지도에 일본의 영토로 표시되었고, 그와 더불어 그 소중한 바다 이름 동해도 일본해로 세계지도에 표시되었다. 2017년 오늘 한국은 여전히 식민지의 잔재와 그 역사의 수레에 짓눌려 국토는 분단 상태에 있고, 위안부 문제와 역사문제 등은 여전히 미 해결상태에 있다. 또한 이러한 포스트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중요한 한가지에 빼앗긴 그 이름 동해도 있다. 빼앗긴 들에는 봄이 왔지만 빼앗긴 바다에는 아직도 봄은 멀기만 하다. 우리는 오늘도 애국가를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여 부르고 있지만. 그 ‘동해’는 ‘Sea of Japan’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고통을 일본인들이 이해하거나 사죄하기는커녕 이를 기화로 독도와 더불어 또 다른 야욕을 점점 키우고 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치욕의 역사를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그 길을 가고 있는 의지의 한국인들이 있다. 외교부, 해양수산부 그리고 우리 해군과 동북아역사재단 등 정부기관, 미국에 있는 한국 교민들과 뜻있는 한국의 젊은이들 그리고 그 두뇌역할을 하고 있는 동해연구회가 그들이다. 이 글에서는 동해라는 이름의 유래와 일본에게 그 이름을 빼앗기게 된 경위 그리고 이를 되찾기 위해 투쟁해온 발자취를 통해 동해 그 귀중한 이름 동해 찾기 여정을 알아보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세대가 후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같이 고민해 보고자 한다.

 

2. 동해라는 이름과 이를 가진 사람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로 둘러싸인 바다의 명칭은 그 역사적 근원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바다를 두고 가장 먼저 구성된 정치적 집단은 고조선이었고, 당시 고조선 이외는 정치체제를 갖추지 못하였기에 이 큰 바다를 통칭하고 부를만한 이들은 없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고조선의 시각에서 분명 큰 바다는 동쪽에 있었고 동해였다.1) 사람의 이름처럼 지명은 그 지명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일부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현지 주민들이 사용하는 이름을 중시하는 것을 일반적인 관례로 한다. 동해는 고조선 이래 수천 년간 사용해온 고유 명칭이다. 삼국사기의 동명왕편(B.C. 57)과 광개토대왕릉비(414년), 팔도총도(1481년) 등을 비롯한 사료와 고지도에도 표기되어 있다. 또한 국제적으로도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전까지 다양한 명칭이 존재했으며 대부분 ‘한국해(Sea of Korea),' ’조선해(Sea of Joseon),' '동양해(Oriental Sea)' 등 한국을 중심으로 한 명칭이 사용되었다. 역사속에서 각국이 작성한 지도는 그 통치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이기에 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동해는 여전히 오늘날에도 한반도의 7,500만 주민이 사용하고 있고 먼 훗날에도 사용될 고유명칭이다. ‘일본해’라는 명칭은 일본의 역사자료에서 18세기 말까지 그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 19세기에 들어와 일본 정부(막부)의 지도제작 담당자 타카하시 카케아스 등에 의해 제작된 ‘일본변계략도(日本邊界略圖, 1809),’ ‘신제여지전도(新製與地全圖, 1844)’ 등 일본이 스스로 제작한 다수 지도가 동해를 ‘조선해(朝鮮海)’로 표기하는 등2) ‘일본해’ 명칭은 동해를 부르는 명칭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은 동쪽 바다를 ‘대 일본해(大日本海)’로 부르고 있었다. 즉 이 시기까지 동해를 한국인은 동해로 불렀고 일본도 조선해로 불러 주인이 누군가가 명확한 시기였다. 이후 일본의 개항과 더불어 ‘대 일본해’는 서양 사람들이 부르던 ‘태평양’이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 정부는 1905년 러시아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직후 ‘동해’를 ‘일본해’로 공식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역사적으로 1905년은 일본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독도를 주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강제로 일본 땅으로 편입한 해이기도 하다.3) 오늘날 일본은 이탈리아인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1602년 북경에서 발간한 세계전도(World Map)를 근거로 연원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영국 및 프랑스 등 주요국들이 소장중인 고지도들을 조사하여 그중 86~95%가 일본해를 사용했었다고 주장하고, 오늘날 유엔과 미국 정부의 일본해 사용을 근거로 그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병기사용 제안에 대하여 일본해 단독 사용에 대하여 근거 없이 도전한다고 비난하고 있다.4)


3. 동해를 일본해라고 덮어 씌우고 우기는 사람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는 일방적 역사기록이란 불행의 씨앗을 의미한다. ‘일본해’라는 명칭은 19세기 후반에 들어 일본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사용이 증가되었다. 일본은 1905년 ‘일본해’를 대외적으로 처음 사용하다 국제적으로 동해라는 이름위에 덮어씌운 것은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였다. 이때 ‘일본해’가 표기된 S-23.5)이 IHO에서 채택되면서 ‘일본해’ 사용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당시 한국은 1910년부터 일본의 식민지였다. 1919년 런던 제1차 수로국회의에 식민지 한국은 없었고 일본만 참가하였으며, 해양과 바다의 한계를 설정하기로 한 결의안에 따라 1923년 일본은 동해를 ‘일본해’로 등록하여 회원국간 회람하였다. 그리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에 따라 1929년 모나코 회의에서 S-23(해양과 바다의 경계) 초판이 그리고 1937년 제2판이 발간 되었다. 이후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에 S-23 제3판이 발간되기에 이르렀다. 즉, 한국이 식민지와 전쟁을 겪었던 시기에 일본이 독단적으로 행한 것이다. 이후 한국은 1957년 IHO에 가입하였으며, 오늘날까지 동해 찾기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에 대하여 부당하거나 국제적 관례에 벗어나는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유엔지명표준화회의6)의 1977년 결의(III/20)와 국제수로기구(IHO)7). 선박의 항해안전을 위해 세계 각국이 발행하는 해도와 수로도서지의 통일성을 기하고 회원국 간 수로정보의 신속한 교환을 위해 1919.6월 런던에서 21개국이 참여하여 제1차 국제수로회의를 열고 IHB(Bureau) 설치를 결의, 이후 1970.9월 정부 간 기구인 IHO로 확대 개편되었다. 한국은 1957년, 북한은 1989년 각각 가입하였다.
1974년 결의(A.4.2.6)는 ‘두개 이상의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지형물에 대한 지명은 관련국들 간의 협의를 통해 결정할 것이며,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 각 국가에서 사용하는 지명을 존중하는 것이 국제사회 지도제작의 일반적인 원칙’이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동해라는 명칭만으로 원상복구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양국간 합의가 되기 이전까지라도 평화의 바다인 동해를 ‘동해’와 ‘일본해’로 병기해 사용하자는 의견이다. 이는 극히 정당하고 합당한 요구라고 할 것이다.

 

4. 동해, 그 귀중한 이름 찾기 위한 우리의 여정


 한국은 1991년 유엔 가입을 통해 동해 표기문제를 유엔(UN)에 제기할 수 있는 국제적 통로를 얻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1992년 제6차 유엔지명표준화회의(UNCSGN) 총회에서 이 문제를 최초로 공식 제기하였다. 이후에도 1997, 2002, 2007년 IHO 총회시 마다 한·일간의 명칭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병기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쳐 왔다. 그러다 2012년 4월 IHO 총회에서 일본은 ‘일본해 단독 표기’를 총회 안건으로 상징하고 이를 확정하기 위해 총회에서 투표를 감행하였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와 대표단의 노력으로 대부분 국가들은 기권 또는 회의장에서 퇴장하고, 4개국은 반대하고 일본만이 찬성한 가운데 부결되었다.8) 기고자는 2012년 IHO 총회에 한국 대표단의 군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중국, 북한, 쿠바, 한국이 반대 하였다. 만약 이 회의에서 일본의 노력이 우세하여 ‘일본해’ 표기가 확정되었다면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하려 했던 이준 열사처럼 조국에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은 이 회의에 대비하여 2012년 2월 5일 총리실 직속으로 ‘영토·주권 대책 기획조정실’을 신설하였고 현재도 운용 중이다.9) 아직도 한국은 이에 대응하는 전담조직이 없다. 2017년 4월 24일부터 28일까지 모나코 IHO 본부에서 개최된 총회에서 S-23 개정문제는 한국이 제기한대로 IHO 사무국 참여하에 비공식 협의체를 구성하여 향후 3년간 협의하고 그 결과를 총회에 보고토록 결정되었다.10) 또한, 한국은 세계 6위의 선박 보유국(총톤수 기준)으로서 새로 신설된 규정에 따라 최초로 IHO 이사회(Council)의 이사국이 되었다.11) 향후 3년간 협의과정에 동해 병기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절대적인 응원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최근 우리 국민과 정부의 지속적 노력으로 세계 언론과 각국의 유수 지도제작사(온라인 지도 포함)의 지도, 출판물 등에서 동해 표기 사례가 확산되고 동해 표기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제고되어 왔다. 2000년(일본 조사)에는 2.8 %만이 동해/일본해를 병기하였으나 2005년(일본 조사) 10.8%, 2007년(한국 조사) 23.8%, 2009년(한국 조사) 28.7%로12) 점점 높아져 왔고 2017년 현재는 훨씬 더 많이 병기되고 있다(비공식적으로 40% 이상). 한국은 각국 정부를 대상으로 외교부와 동북아역사재단이 중심이 되어 일본의 방해 속에서도 각국 정부에 대한 교섭활동, 유엔과 미국정부 등이 주관하는 각종 국제회의에서 적극적 의견 개진, 해외전문가 국내 초빙 또는 해외에서 전문가들을 초빙 현지 세미나 개최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각국 지도제작자 및 교육부 담당자를 초청한 한국 알리기 사업, 미국의 지리교사 및 교과서 집필자 한국초청 사업, 해외 전문가들과 네트워킹 강화 등 다양한 노력을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해양조사원 및 동해연구회가 추진하고 있다. 한편, 재미 동포들의 노력으로13) 2014년에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모든 교과서에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House Bill No.11) 일명 동해병기 법안)이 통과되었으며, 한국의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도 ‘동해 찾기 80일 행군’에 "4월 모나코 IHO 총회서 동해 되찾자, 반크도 '80일 행군에 나서는 등14) 국내외에서 민간차원의 많은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제 식민지의 잔재속에서 동해 찾기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보다 더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주변국과의 영토, 해양, 공역 및 명칭문제를 전담할 정부차원의 컨트롤 타워와 장기 추진계획 및 위기관리 체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정부기구와 민간부분의 긴밀한 공조, 정부(군 포함)와 학계 및 언론계의 전문가 양성이 매우 시급하다. 이준 열사의 어록 중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며, 위대한 인물은 반드시 조국을 위하여 조국의 생명의 피가 되어야 한다.”를 상기해 본다.15)


5. 결 론


한국의 동해에서 한·일간의 문제가 된 ‘독도 표기’와 ‘동해 표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독도는 한국의 주권하에 있는 영토로서 그 지명은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독도(Dokdo)’이다. 그러나 ‘동해(East Sea)’는 한국(북한 포함), 일본, 러시아 등이 접하는 해역으로 국가 간의 경계가 불분명하므로 지명에 대한 분쟁이 발생할 수 있기에 지명에 대한 공통된 합의가 필요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병기라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부당하게 개명된 ‘동해’ 명칭의 병기는, 국제기구와 국제규범도 이를 권고하는 사항으로 한국의 의견은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극구 반대하면서 독도 침탈 야욕과 더불어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에 한국인들은 더욱 동해 이름 찾기 여정에 강력한 힘을 모아야 한다.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동해/일본해 병기를 합의한다면 이는 1+1=2의 단순한 수학공식을 넘어 가장 가까운 이웃인 양국의 우의와 협력 그리고 관계발전 그리고 향후의 7광구 문제 해결 등에도 좋은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795년 임마뉴엘 칸트와 19세기 철학자 헤겔이 강조했듯이 ‘평화는 전쟁 이상의 것이며, 이는 사회적 정의와 화합을 위한 도전’이기 때문이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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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계일보, 2017년 5월 10일자>

 

 

<참고자료>

 

1) Vyacheslav G. SHVEDOV, Professor of Amur State University of Russia, "동해/일본해 지명의 역사적 근원에 대하여,“ 20161025일 국제세미나에서 의견 제시, 동해연구회 회의록(서울: 동해연구회, 2017), pp.23-24.

2) 외교부 홈페이지, http://www.mofa.go.kr/trade/keyissue/eastsea/index.jsp?mofat=001&menu= m_30_40_30(검색일: 2017년 5월14일).

3) 일본은 독도를 1905.1.28.일 다케시마로 명명하여 편입하고, 이후 1954, 1962,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독도문제해결을 주장해왔으며, 2005.3월에는 다케시마의 날(2.22)을 제정하고, 영유권 관련 2005년부터는 방위백서에, 2008년 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 그리고 2010년부터 교과서에 싣고 있다.

4) IHO S-23 Working Group, Area of Concern - Responses to IHB Letter S3/7020 of 9 Novenber 2009, 2010년 1월 8일, pp. 11-18;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http://www.mofa.go.jp /a_o/na/page1we_000113.html(검색일: 2017년 5월15일).

5) S-23(Special Publication # 23)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 IHO에서 세계 바다의 명칭과 구역을 정하여 선박의 항해안전과 수로학 및 해양학적인 활용을 목적으로 발간한 책자. IHO는 '수로측량기준(S-44),' '전자해도 제작기준' (S-52, S-57)' 등 많은 발간물이 있다.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 참조, http://www.khoa.go.kr/kcom/cnt/selectContentsPage.do?cntId= 51203030(검색일: 2017년 5월15일).

6)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he Standardization of Geographical Names. UN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정확한 지명 표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59년 유엔경제사회이사회(UN ECOSOC)의 결의에 따라 1967년 제1차 UNCSGN 회의를 개최하였다. 5년 주기로 개최되며 제11차 회의가 2017.8.8.-8.17.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지명표준화 원칙, 절차 등은 결의(Resolution)를 통해 채택된다.

7)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선박의 항해안전을 위해 세계 각국이 발행하는 해도와 수로도서지의 통일성을 기하고 회원국 간 수로정보의 신속한 교환을 위해 1919.6월 런던에서 21개국이 참여하여 제1차 국제수로회의를 열고 IHB(Bureau) 설치를 결의, 이후 1970.9월 정부 간 기구인 IHO로 확대 개편되었다. 한국은 1957년, 북한은 1989년 각각 가입하였다.

8) 기고자는 2012년 IHO 총회에 한국 대표단의 군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중국, 북한, 쿠바, 한국이 반대 하였다. 만약 이 회의에서 일본의 노력이 우세하여 ‘일본해’ 표기가 확정되었다면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하려 했던 이준 열사처럼 조국에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9) 일 총리실 홈페이지 참조 http://japan.kantei.go.jp/96_abe/actions/201304/ 23ryoudo_e.html(검색일: 2017년 5월14일).

10) “동해표기 결론 못내...2020년까지 IHO 비공식 협의체서 논의,” 『news1』, 2017년 4월 28일.

11) 한국은 국적선 화물선 2,988.5만 톤으로 중국, 몰타, 싱가폴, 영국, 그리스 다음 세계 6위이다, “한, 국제수로기구 이사국 진출 확정” 『이데일리』, 2017년 4월 30일.

12) 앞의 외교부 홈페이지 참조

13) 재미 동포들은 2015년 우리 국회에서 ‘동해 병기 추진본부’를 발족하였고, 2017년에는 IHO회의 대비 동해병기관련 백악관 청원에 108,300명이 참가하고 IHO에 공문을 발송하였다. “미 교민 11만 명, 백악관에 동해병기 청원...IHO에도 공문,” 『SBS 뉴스』, 2017년 4월 26일

14) "4월 모나코 IHO 총회서 동해 되찾자, 반크 '80일 행군' 돌입,“ 『연합뉴스』, 2017년 2월 3일.

15) “선열의 애국심을 느끼는 걷기,” 『브레인미디어』, 2015년 4월 21일.

16) Joseph P. Stoltman, Professor, Western Michigan University, U.S.A. "The East Sea: Peace, Education, and Geograhpican Naming," Seas and Islands: Connecting People, Culture, History and the Future, (Seoul: The Society of East Sea, 2016), 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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